글 작성자: 박레온

자기신뢰 책을 선물한 적이 있다. 와닿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라고 한다. "나도 그랬었다"고 하니 어떤 부분인지 궁금해하셔서 글을 쓴다. 와닿지 않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안다. 지금껏 10번 정도 읽었는데 처음과 다르게 다가온 내용들이 많다.

책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야기하는 것처럼 처음-중간-끝이 아닌 말을 툭툭 내뱉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문장과 문장의 틈이 큰 책이다. 그만큼 생각할만한 꺼리가 많다는 뜻이다.

여튼, 처음 읽었을 때와 지금. 다르게 느낀 부분을 정리해본다.


처음 읽었을 땐,
쌩뚱맞게 뭔 개소리지 했다. 에머슨은 이전 페이지(21) 에 "아기" 이야기를 하며 그들의 마음은 온전하며 그들의 눈은 아직 누구에게도 정복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기"는 아무에게도 맞추지 않으며 오히려 세계가 아기에게 맞출 뿐이라고 한다.

그 아기가 커서 지금의 젊은이가 된다. 젊은이도 아기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매력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고 품위를 갖출 수 있다고 한다. 신은 사람의 본연 모습을 간직하는 한, 그들의 주장이 무시당하는 일이 없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다시 읽었을 땐,
에머슨은 나이와 상관 없이 누구나 본연의 모습대로 살고 그 모습이 옳다고 주장한다. 위 글은 젊은이의 한순간 모습으로 평가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에게는 본연의 모습이 있다는 내용이다.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나아가서는 함부로 타인을 재단하거나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법을 잊은 나이 많은 사람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아기" 이야기와 같다. 젊은이가 쩔쩔매며 할 말을 못하는 건 굳이 맞추려는 노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기보다 나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력하거나 쓸모가 없는 등의 평가를 내리는 건 옳지 않다. 나이가 어떻든 본성대로 살아가면 결국 세계가 그 사람에게 맞출 것이다. 왜냐면 그는 아무에게도 맞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순환 논리가 아니다. 어쨌든 사람은 죽지 않으면 살아간다. 살아진다. 명제다. 사람들의 세계는 다 다르다.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생각이 다르고 같은 환경에 있더라도 다른 것을 본다. 본성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간다. 그렇기에 세계가 그 사람에게 맞춰지는 것이다.

처음 읽었을 땐,
솔직히 내용 자체를 이해 못했다. 갑자기 위에 있는 ? 해당하는 말을 하길래 뭐가 악의고 뭐가 사랑이지? 싶었다. 나무를 패고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도 전혀 이해가 안 됐다.

이전 페이지(30)를 천천히 봤다. 악의와 허영심이 박애라는 옷을 걸치고 나타난다면 눈감아주어야 할까? 어떤 사람이 노예제도 폐지라는 박애적인 임무를 맡았지만 사실은 험악한 고집쟁이라고 가정한다. 그에게 ? 표시된 문장을 말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사람에게 저렇게 말하는 건 무례한 짓이지만, 그럼에도 진실은 가식적인 사랑보다 훌륭하다 고 말한다.

다시 읽었을 땐,
맞는 말이구나 했다. 이렇게 생각한다.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면 이게 맞나? 바가지가 밖으로 새는 게 아니라 안으로 새는 것이다.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옳지 않다.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다. 선한 마음으로 보육원 운영한다고 알려진 사람이 사실은 아이들을 팔고 있다는 내용 등이다. 박애라는 옷을 걸친 악의와 허영심이다.

특이한 부분이 있다. 에머슨은 이 상황이 아닌 철저히 자신에게 주목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왜 노예들을 위해서 신경써야 되는가? 그럴 의무가 나한테 있다고? 왜 그런 말을 나한테 하냐, 왜 내가 떠맡아야 되는데? 꺼져라" 이게 위의 내용이다. 이후에 이런 말을한다.

내게 속하지 않은 사람들, 내가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주는 돈은 단돈 1달러라도, 1다임이라도, 1센트라도 나는 아깝다.

책의 제목은 "자기신뢰"다. 에머슨은 신을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그렇기에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내용이기도 하며 계몽적이다. 여튼 본성에 반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악의와 허영심 등 좋지 않은 의도가 있던, 정말 박애적인 사람이던 간에 내게 그럴 의무가 있다고 말하지 말고 꺼지라는 것이다.

에머슨은 말한다. 나 자신을 사고 팔아도 좋을 만큼 가까운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필요하다면 감옥에라도 간다. 주체는 "나"다. 내 천성이 나를 부르면, 본성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기꺼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위의 글과 동일하다.

처음 읽었을 땐,
문장은 알겠다만 여행을 너무 적대시하는 것이 아닌가 했다.

다시 읽었을 땐,
에머슨이 살던 시대의 여행은 소수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교통수단도 발전해 이전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했지만 특권층이나 학자, 예술가들이 주로 갔었다. 또한 이 시기에 여행이란 내면의 성장과 자기 발견의 과정으로 인식되었다. 낭만주의에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여행에 대한 시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자기 발견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례가 있다. 어릴 때 미국 유학 다녀온 아이가 한국 적응을 못하는 것이다. 그 아이는 언제든 다시 미국에 갈 날만 기다리고 있다. 생각이 클수록 한국은 최악이라고 느낀다. 이게 에머슨이 말하는 폐허에 폐허를 가져간다는 뜻이다.

여행에 대한 경험이 좋았다, 안 좋았다를 떠나서 자아를 위해 다녀온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 자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악영향을 주는 사례가 있단 것이다. 떠나고 싶겠지. 근질근질하겠지. 근데 사실상 지금 삶을 회피하고 싶은 목적이 훨씬 클 것이다. 여행을 떠나 자신을 찾는 게 아닌 진정한 변화는 내부에서 이뤄져야 한다.

지금의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수단이 여행이 되면 안 된다. 다녀와서는 어쩌려고? 계속 피폐하게 살다가 다시 비행기 뜰 날만 기다리려고? 이민이 목표라면 그럴 순 있겠다만, 다시 들어오는 여행으로 봤을 때 옳지 않다. 폐허에 폐허를 가져온다. 여행이 아닌, 지금 내부에서 자신을 찾아라.

모든 사람들이 사회가 진보한다고 자랑하지만, 진보하는 인간은 한 사람도 없다.

"놀랍다" 느낀 문장이라 공유한다. 끝.